BLOG ARTICLE 축구 | 9 ARTICLE FOUND

  1. 2008년 11월 13일 [펌] 챔피언리그 간략사-01
  2. 2008년 04월 22일 긱스 드리블
  3. 2007년 09월 28일 [축구] 개인기 강좌
  4. 2007년 09월 20일 [축구] 오웬의 축구강좌 - 컨트롤
  5. 2007년 09월 20일 [축구] 오웬의 축구강좌 - 드리블
  6. 2007년 09월 20일 [축구] 오웬의 축구강좌 - 킥
  7. 2007년 09월 20일 [축구] 프랑스 드리블 강좌
  8. 2007년 09월 18일 [축구] 개인기 30가지
  9. 2007년 09월 14일 [축구] 긱스의 드리블 강좌

[펌] 챔피언리그 간략사-01

morning/soccer 2008년 11월 13일 10시 23분

챔피언스리그를 흔히 'European Elites' League'라고 한다. 엘리트들의 리그. 잘난 친구들만 모여서 하는 리그라는 뜻이다. 힘 센 놈들끼리 붙으니까 더 재미 있고 더 의미가 크다. 또 잘난 놈들끼리만 하니까, 다른 약한 친구들은 끼어들 틈이 없다. 재미는 있지만, 유럽축구의 빈부 격차를 조장한다는 비난의 대상이 챔피언스리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UEFA 챔피언스 리그의 공식 로고

** 출처: UEFA 웹사이트 **


챔피언스리그는 1955년에 처음 생겨났다. 당시 공식 대회 명칭은 '유로피언 챔피언 클럽스 컵'이었고 이를 줄여서 '유로피언 컵'이라고 불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올림픽, 월드컵 등의 스포츠 이벤트를 할 정신적 여유들이 생겨나자 프랑스의 스포츠 기자의 아이디어로 시작되었다. 뭐든지 메가 스포츠 이벤트를 만들어내는 건 프랑스 친구들이다. 올림픽, 월드컵 몽땅 프랑스 친구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세계축구협회 격인 FIFA 역시 프랑스 친구들의 작품으로 조직명 자체가 프랑스어다. FIFA = Fede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


첫 대회

1955/56시즌에 처음 시작된 대회에는 총 16개 팀이 참가했다. 16강부터 준결승전까지는 홈 & 어웨이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결승전만 중립지역에서 단판 승부로 우승팀을 가렸다.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와 프랑스의 스타드 람스가 프랑스 파리의 파르크 데 프랑스(Parc des Princes, 현재 PSG 홈구장) 구장에서 맞붙었다.


디 스테파노, 무뇨스, 리알, 헨토스 등의 호화군단 레알 마드리드는 두 골을 먼저 내주고도 네 골을 몰아쳐 결국 4-3으로 최초의 유럽 챔피언으로 등극했다. 참고적으로 이 때 잉글랜드 클럽들은 쪽 팔리다는 이유로 국제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다. 축구를 만들어 보급했고 우리가 축구 제일 잘 하는데, 뭐하러 쪽 팔리게 애들 노는 데 가냐, 라고 생각했었다. 잉글랜드 행님들은 예나 지금이나 기고만장이다. (일관성 있어서 참 좋다.-_-)


어쨌든 그 유명한 디 스테파노, 푸스카스가 이끄는 레알 마드리드는 천하무적이었다. 원년 대회부터 시작해서 1960년 5회 대회까지 5연패 싹쓸이. 총 우승횟수가 5회이거나 3연속 우승을 차지하면 우승 트로피 진품을 구단이 영원히 소유하게 된다는 규정이 생기기가 무섭게 스페인 친구들이 최초의 우승 트로피 진품을 낼름 가져가버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60년 결승전(프랑크푸르트v레알마드리드) 매치데이 프로그램]

레알 마드리드가 7-3으로 이겼다. 디 스테파노 3골, 푸스카스 4골... 배트맨 & 로빈이냐...-_-;

** 출처: http://cupfinalprogrammes.co.uk/index.php?main_page=index&cPath=5 **



브리티시 클럽 첫 우승

2회 대회부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출전하기 시작했지만, 정작 챔피언스리그에서 처음 우승한 영국 클럽은 잉글랜드가 아닌 스코틀랜드에서 나왔다. 이름하여 쎌틱! 아는 사람은 다 알듯이, 영국 축구 역사에 길이 남는 인물들 중에는 스코틀랜드 출신이 많다. 클럽 역시 마찬가지. 쎌틱은 1967년 리스본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카테나치오 선풍을 몰고 있던 인터 밀란을 2-1로 격파하고 우승을 차지했다. (참고로 1967년에 스코티시 리그의 떠오르는 유망주 알렉스 퍼거슨이 덤퍼라인에서 레인저스로 이적하는 꿈을 이룬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66/67시즌 유로피언 컵에서 우승한 셀틱]

앞줄 맨 왼쪽이 지미 존스톤이다. 셀틱 팬들이 뽑은 구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 출처: http://www.jocksteincsc.com/celtic heroes.html **



진정한 축구 황금시대

1968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런던 웸블리 구장에서 개최된 결승전에서 에우제비오의 벤피카를 4-1로 꺾고 우승을 차지한다. 1958년 뮌헨 참사로부터 정확히 10년 후 맷 버스비의 쾌거였으며, 이 드라마로 맨유는 전세계적 인기를 얻는다.


1970년 들어서는 유로피언 우승팀 명단을 외우기가 쉬워진다. 아약스 3연패, 바이에른 뮌헨 3연패, 리버풀 2연패, 노팅햄 포레스트 2연패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름만 들어도 '오~~~' 소리 나올 만한 킹왕짱 슈퍼스타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 아약스: 요한 크루이프, 요한 네스켄스, 아리에 한(기억하는가! 중국 대표팀 감독이었다) 등등

- 바이에른 뮌헨: 프란츠 베켄바우어, 율리 회네스, 게르트 뮐러 등등 --> 크라머 감독이 두 번 우승

- 리버풀: 케빈 키건, 케니 다글리쉬, 그래엄 수네스, 알란 한센 등등


많은 사람들은 1970년대를 축구의 황금시대라고 부른다. 미디어 기술도 변변치 않았던 시절, 이렇게 전세계적 슈퍼스타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매우 놀랍다. 요즘에야 TV만 켜면, 인터넷에 접속만 하면, 전세계 축구 소식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오는 세상에는 스타 플레이어가 많아지기 쉬운 환경이지만, 그 당시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국내에 컬러TV가 보급되기 시작한 것도 1970년대 후반이었을 정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72/73시즌 아약스의 유로피언 컵 3연패 달성]

우승컵을 들고 있는 게 크루이프. 선수들이 유니폼을 교환해서 마치 유벤투스가 우승한 것 같다.

** 출처: http://www.ajax-usa.com/desk/the-greatest-game-ever.html **



잉걸란~~드, 잉걸란~~드, 잉걸란~~~

1968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후 뜸하던 잉글랜드 클럽들의 시대가 열린다. 리버풀이 올코트 프레싱 축구(아~~ 지겹다. 리버풀은 이때도 냅다 뛰어다녔다)로 1977년 우승한 것을 시작하여, 노팅햄 포레스트, 아스톤 빌라가 내리 유로피언 컵을 독식했다.


- 1977: 리버풀

- 1978: 리버풀

- 1979: 노팅햄 포레스트

- 1980: 노팅햄 포레스트

- 1981: 리버풀

- 1982: 아스톤 빌라

- 1983: 함부르크

- 1984: 리버풀


...뭐 이런 식이다.  이런 잉글랜드 클럽들의 득세는 클럽 자체의 인기를 높이기도 했지만, 잉글랜드의 고약한 훌리건 문화를 전 유럽으로 전파하는 계기가 된다. 원정 가는 곳마다 잉글랜드 팬들은 술에 취해 싸움을 걸고 기물을 부수며 유럽인들의 골칫덩어리가 되었다. 'England'가 아니라 'ANGERland'로 나라 이름을 바꿔야 하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하여튼 문제만 일으켰다. 하지만, 대륙의 축구 광팬들은 이걸 보고 "오~~ 죽이는데! 우리도 하자. 아뵤~~"라고 받아들였다. 나쁜 건 언제나 전파 속도가 빠르다.


그러나 뭐든지 과하면 탈이 난다. 1984년 우승에 이어 1985년에도 결승전에 오른 리버풀은 벨기에의 헤이젤 스타디움에서 미셸 플라티니의 유벤투스와 결승전을 벌였다. 그러나 경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사고가 터졌다. 리버풀 팬들이 유벤투스 팬들을 한쪽으로 몰아세웠고, 도망가려는 유벤투스 팬들이 계속 한쪽 면으로 첩첩 몰려들었다. 벽면이 무너지고 인파에 깔린 39명의 축구 팬들이 목숨을 잃었다.


- 사망자: 이탈리아인(유벤투스 팬) 32명, 벨기에인 4명, 프랑스인 2명, 아일랜드인 1명


사용자 삽입 이미지

[리버풀 팬과 스탠드 벽면 사이에 끼어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유벤투스 팬들]

반대쪽에서는 리버풀 팬들이 흉기를 휘두르며 이들을 계속 몰아세우고 있다.

** 출처: http://www.channel4.com/history/microsites/H/heysel/index.html **


이 대참사로 인해 UEFA는 리버풀에겐 10년간 유럽 대회 출전 금지, 모든 잉글랜드 클럽들에게는 5년간 출전 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그 전까지 유럽을 호령했던 잉글랜드 클럽들은 멍청한 팬들, 안이한 경기장 군중 관리로 인해 유럽 무대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넌 누구냐?

강호의 명문파 하나가 빠지자 바야흐로 군웅할거의 시대가 도래하는 듯 했다. 1986년에는 드라큘라들이 나타나 바르셀로나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루마니아 최고 명문 슈테아 부쿠레스티가 결승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바르셀로나를 2-0으로 물리치고 첫 우승의 영광을 누렸다. 이듬 해에는 벤피카에게 질쏘냐 포르투 FC가 우승, 그 다음에는 우리의 희동구 선생이 이끈 PSV아인트호벤이 우승을 거머쥐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88년 유로피언 컵 우승 후 PSV에 입단한 호마리우]

당시 나이 호마리우 22세, 희동구 선생 42세... (서울에선 88올림픽, 난 16살...-_-)

** 출처: http://psv1913.web-log.nl/ **



그러나 그것도 잠깐. 이탈리아 형님들을 비롯한 강력한 문파들이 힘을 재정비하여 다시 낯익은 우승팀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밀란, 유벤투스, 바이에른 뮌헨 등의 부활.


그리고 1992/93시즌에는 대회 명칭이 오늘날의 'UEFA 챔피언스리그'로 바뀌었다. 대회 포맷도 약간 바뀌는 등, 새로운 시대가 왔다고 UEFA는 선전했다. 그 선전 대로 챔피언스리그 원년 챔피언에 난데 없이 마르세유가 등극하면서 UEFA를 기쁘게 해줬다. 유럽을 접수한 프랑스 축구의 황금멤버들은 나아가 1998년 월드컵 유로2000까지 우승한다.


지금까지 유로피언 컵의 간략사. 다음에는 챔피언스리그 간략사.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긱스 드리블

morning/soccer 2008년 04월 22일 09시 10분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축구] 개인기 강좌

morning/soccer 2007년 09월 28일 18시 49분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축구] 오웬의 축구강좌 - 킥

morning/soccer 2007년 09월 20일 09시 57분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축구] 프랑스 드리블 강좌

morning/soccer 2007년 09월 20일 09시 46분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축구] 개인기 30가지

morning/soccer 2007년 09월 18일 14시 09분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축구] 긱스의 드리블 강좌

morning/soccer 2007년 09월 14일 13시 25분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